무슨 신호인가요?
로레알이 미국에서 커지는 소송 책임을 다루기 위해 구조조정 자문을 선임했다는 보도가 10월 초에 나왔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로레알 미국 법인은 구조조정 전문 법률사무소 Weil, Gotshal & Manges 와 투자은행 Ducera Partners 와 함께, 탈크 제품 때문에 병을 얻었다고 주장하는 개인들의 소송에 대응하는 방안을 보고 있습니다. 검토 중인 구조는 불법행위 책임을 별도 법인으로 옮긴 뒤 외부 투자자에게 매각해 운영 사업에서 분리하는 방식이고, 파산보호(Chapter 11) 밖의 선택지로는 허니웰이 지난해 일부 석면 책임을 기업 책임 인수 플랫폼 Delticus 에 넘긴 거래와 비슷한 매각이 검토되고 있다고 전해졌습니다.
건수가 방향을 보여줍니다. 로레알은 가장 최근 반기 보고서에서, 일부 탈크 함유 화장품에 석면 입자가 있었다는 주장과 관련한 미국 소송이 6월 30일 기준 약 760건 계류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2025년 말 약 620건에서 늘어난 숫자입니다.
규제 쪽은 반대로 비어 있습니다. FDA 는 2022년 화장품규제현대화법(MoCRA)에 따라 탈크 함유 화장품에서 석면을 검출·식별하는 표준 시험법을 규정으로 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2024년 12월 27일 관보에 제안 규정을 실었습니다. 제조자가 탈크 함유 화장품의 배치 또는 로트마다 대표 시료를 두 가지 방법으로 시험하게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편광현미경(PLM)과, 투과전자현미경·에너지분산분광·선택영역전자회절을 묶은 방법(TEM/EDS/SAED)입니다. 그런데 FDA 는 2025년 11월 28일 이 제안을 철회했습니다. 의견 수렴 기간에 받은 의견이 최종 규정을 내기 전에 더 검토하고 평가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철회가 관심을 거뒀다는 뜻은 아닙니다. 표준 시험법을 정하라는 MoCRA 의 요구는 법에 그대로 남아 있고, FDA 는 그와 별개로 유통 중인 탈크 함유 화장품을 직접 수집해 석면 시험을 해 왔습니다. 2023년에 한 시험 결과도 공개했습니다.
읽는 범위를 정해 두겠습니다. 로레알 건은 회사가 검토 중인 방안에 대한 보도이고 확정된 거래가 아닙니다. 760건은 로레알 한 회사의 미국 계류 건수이며 6월 30일 기준이라 그 이후 변동은 반영되지 않았고, 소송은 주장 단계이므로 탈크의 안전성이나 석면 함유가 입증됐다는 뜻이 아닙니다. 철회된 제안에 적혀 있던 시험법은 지금 법적 의무가 아니며, 한국·EU 등 다른 시장의 탈크 기준은 따로 확인해야 합니다. 그래도 개발 쪽 질문은 분명해집니다. 탈크를 쓸 것인가, 쓴다면 어떤 시험과 어떤 기록으로 설명할 것인가입니다.
1. 규정이 비었다는 것은 할 일이 줄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규정 하나가 철회되면 보통 부담이 줄었다고 읽습니다. 탈크는 그렇게 읽기 어려운 사례입니다. 표준 시험법이 규정으로 정해져 있으면 '그 방법대로 시험하고 기록을 남겼다'는 것이 기본 방어선이 됩니다. 규정이 없으면 그 기준선이 없고, 무엇을 어떻게 시험했는지와 그 방법이 적절했는지까지 스스로 설명해야 합니다.
그래서 철회된 제안의 내용은 의무가 아니더라도 참고 기준으로서 값이 있습니다. 규제기관이 적절하다고 보고 제안했던 조합이 두 가지 현미경법을 함께 쓰는 것이었고, 시험 단위는 배치 또는 로트의 대표 시료였습니다. 지금 공급사에서 받는 성적서가 어떤 방법으로, 어느 단위로 시험한 것인지 이 기준에 대 보면 빈칸이 보입니다.
시점도 고려할 만합니다. 법에 남은 의무가 사라진 것이 아니므로 새 제안이 다시 나올 수 있습니다. 지금 받는 성적서의 수준을 그 조합에 맞춰 두면 규정이 돌아왔을 때 공급사를 다시 설득하고 시험을 다시 돌리는 일을 줄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아직 의무가 아니다'를 기준으로 서류를 받아 두면, 규정이 생긴 뒤에 이미 생산한 로트의 기록을 소급해 만들 방법이 없습니다.
- 탈크 성적서에 적힌 시험 방법 이름을 확인했는지
- 시험 단위가 로트인지, 연간 대표 시료 한 번인지
- 검출 한계가 성적서에 적혀 있는지
- 성적서의 시료 로트와 우리 완제품 로트를 이을 번호가 있는지
2. 탈크를 빼는 결정은 사용감부터 다시 짭니다
탈크는 프레스드 파우더나 아이섀도처럼 분체가 중심인 제형에서 발림과 퍼짐, 분체끼리의 윤활, 성형성, 부피를 맞추는 역할로 오래 쓰여 온 원료입니다. 빼기로 하면 그 역할을 마이카·세리사이트·실리카·전분계 분체 같은 조합으로 나눠 다시 설계하게 됩니다.
바뀌는 것이 처방표 한 줄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분체 조합이 바뀌면 발색과 피부 위에서의 밀착, 프레스드 케이크의 성형 강도, 낙하와 운송 시험, 팩트 용기와의 조합까지 다시 확인해야 합니다. 그래서 '탈크 프리'는 라벨에 적는 문구이기 전에 처방 재설계이고, 이미 팔고 있던 제품의 처방을 바꾸면 소비자가 느끼는 사용감이 달라져 재구매에도 영향이 갑니다.
결정 시점을 앞으로 당기는 편이 비용이 적게 듭니다. 분체 조합은 금형과 용기, 충전·성형 조건과 함께 묶여 있어서 처방을 거의 확정한 뒤에 탈크를 빼면 이미 승인한 용기와 성형 조건을 되돌리게 됩니다. 기획서에 '탈크 사용 여부'를 제형 결정과 같은 줄에 적어 두면 그 뒤 결정들이 한 번에 정리됩니다.
- 탈크를 쓸지 말지를 제형·용기 결정 전에 정했는지
- 대체 조합으로 바꿀 때 다시 볼 시험 목록(발색·성형 강도·낙하)이 있는지
- 기존 제품의 처방을 바꾸는 경우 사용감 변화를 어떻게 확인할지
- 미국 외 수출 시장의 탈크 관련 기준을 따로 확인했는지
3. 관리 단위는 원료명이 아니라 공급사와 로트입니다
탈크는 합성 원료가 아니라 채굴해 정제하는 광물입니다. 소송의 쟁점도 '탈크를 썼다'가 아니라 '일부 탈크 함유 제품에 석면 입자가 있었다'는 주장이고, FDA 가 유통 제품을 수집해 석면을 시험해 온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그래서 관리 단위가 전성분에 적히는 원료명이 아니라 공급사와 산지, 로트가 됩니다.
전성분에는 한 줄로 들어가지만 그 한 줄 뒤의 조건은 로트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성적서를 받을 때 확인할 것은 '불검출'이라는 결과만이 아니라 어떤 방법으로 시험했고 검출 한계가 어디까지이며 어느 로트의 시료였는지입니다. 이 세 가지가 빠진 성적서는 몇 년 뒤에 그 로트를 설명해야 할 때 쓸 수 없습니다.
조용히 지나가기 쉬운 지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공급사를 바꾸거나 같은 공급사가 산지나 정제 경로를 바꾸는 경우입니다. 처방표는 그대로이고 원료명도 그대로여서 변경 관리 절차에 걸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탈크를 쓰는 제품이라면 공급사·산지 변경을 처방 변경과 같은 무게로 다루고, 변경 시 성적서를 다시 받는 조건을 미리 정해 두는 편이 낫습니다.
4. '탈크 프리'와 '석면 불검출'은 증명 경로가 다릅니다
두 문구는 비슷하게 들리지만 뒷받침하는 서류가 다릅니다. '탈크 프리'는 처방에 탈크를 넣지 않았다는 사실이라 처방서와 원료 목록, 그리고 교차 오염을 막는 생산 조건으로 설명합니다. '석면 불검출'은 시험 결과이므로 시료와 시험 방법, 검출 한계, 로트가 함께 있어야 의미가 생깁니다.
'불검출'이라는 말의 뜻도 짚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쓴 시험법의 검출 한계 아래라는 뜻이고, 어떤 조건에서도 전혀 없다는 증명은 아닙니다. 그래서 라벨이나 홍보 문구에 쓸 때는 어떤 방법으로 어디까지 확인했는지가 기록에 남아 있어야 합니다. 검출 한계가 적히지 않은 성적서로 단정적인 문구를 쓰면 나중에 그 문구를 설명할 근거가 없습니다.
탈크를 뺐다고 질문이 끝나지도 않습니다. 대체 조합에 다른 광물성 분체를 쓴다면 그 원료가 어디서 채굴·정제됐고 어떤 시험을 거쳤는지는 같은 방식으로 확인할 항목으로 남습니다. 탈크 프리로 바꾼 것 자체가 광물성 원료 전체에 대한 답은 아닙니다.
- 쓰려는 문구가 처방으로 증명되는 것인지, 시험으로 증명되는 것인지
- 성적서에 시료 로트·시험 방법·검출 한계가 모두 적혀 있는지
- 탈크 프리라면 교차 오염을 막는 생산 조건을 적어 두었는지
- 대체로 쓰는 광물성 분체의 공급 경로도 같은 수준으로 보고 있는지
5. 책임이 어디에 남는지 보십시오
로레알이 검토 중인 방안의 핵심은 책임을 운영 사업에서 떼어내는 것입니다. 그만한 규모의 회사가 전문 자문을 선임해 그런 수단을 보고 있다는 사실은, 이 유형의 책임이 길고 무겁다는 신호로 읽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작은 브랜드에는 그런 수단이 없습니다.
소비자와 유통은 제품에 적힌 브랜드 이름을 봅니다. 생산을 위탁했더라도 판매한 쪽의 이름으로 질문이 돌아옵니다. 그래서 위탁 생산에서 실제 차이를 만드는 것은 원료 성적서와 시험 기록의 사본을 브랜드가 받아 보관하는지, 아니면 제조원에만 남아 있는지입니다. 몇 년 뒤 그 기록을 요구받는 쪽은 브랜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보관 기간도 함께 정해야 합니다. 로레알의 미국 계류 건수가 2025년 말 약 620건에서 6월 30일 약 760건으로 늘었다는 것은, 이 유형의 청구가 출시 이후 긴 시간에 걸쳐 들어온다는 성격을 보여줍니다. 생산이 끝나고 거래가 정리된 뒤에도 로트별 기록을 찾을 수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보관 기간과 보관 주체를 생산 시작 전에 적어 두는 쪽이 안전합니다.
제품 기획서에 먼저 적을 질문
'파우더 제품'이라고 적는 대신 한 문장으로 좁혀 보시기 바랍니다. '탈크를 쓰는가, 쓴다면 로트마다 어떤 시험법으로 확인한 성적서를 받는가'를 제형 결정과 같은 줄에 적으면 용기와 성형 조건, 라벨 문구까지 이어서 정리됩니다.
두 번째로 적을 것은 원료 공급 경로 한 장입니다. 공급사, 산지, 로트 번호, 받을 성적서의 시험 방법과 검출 한계, 그리고 공급사나 산지가 바뀔 때 다시 받을 조건까지 한 장에 둡니다. 이 장이 없으면 전성분의 한 줄만 남고 그 뒤의 조건은 아무도 추적하지 못합니다.
마지막은 기록을 어디에 두는가입니다. 성적서와 시험 기록을 몇 년 보관할지, 보관 주체가 브랜드인지 제조원인지, 원료 로트와 완제품 로트를 잇는 번호가 있는지를 생산 시작 전에 정해 두십시오. 규정이 비어 있는 구간에서 남는 것은 결국 그 기록뿐입니다.
참고한 자료
- Testing Methods for Detecting and Identifying Asbestos in Talc-Containing Cosmetic Products; Withdrawal — Federal Register (U.S. Food and Drug Administration), 2025-11-28
- FDA Proposes Rule to Require Standardized Testing Methods for Detecting and Identifying Asbestos in Talc-Containing Cosmetic Products — U.S. Food and Drug Administration
- FDA Releases Data from the Agency's 2023 Testing of Talc-Containing Cosmetic Products for Asbestos — U.S. Food and Drug Administration
- L'Oreal explores unloading chemical-related liabilities: Report — Business Insurance
- L'Oreal Taps Advisers to Explore Options for US Talc Liabilities — Global Cosmetics News, 2026-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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