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신호인가요?
서울경제는 9월 17일 보도에서, 다이소가 만든 5,000원 이하 화장품 가격대에 대형 유통사들이 들어오고 있고 같은 흐름이 영국과 미국 리테일러로도 번지고 있다고 정리했습니다. 이마트는 17일 화장품 기업 엔프라니의 브랜드 홀리카홀리카와 손잡고 초저가 스킨케어 라인 '솔루시안 바이 홀리카홀리카' 5종을 내놨습니다. 앞서 이마트는 LG생활건강의 브랜드 비욘드와 함께 '글로우:업 바이 비욘드' 스킨케어 8종을 각 4,950원에 단독 판매하기도 했습니다.
편의점도 같은 가격대를 파고들고 있습니다. CU는 뷰티 특화점을 전국 약 600곳으로 늘렸고, GS25는 3,000원 균일가 화장품과 소용량 제품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다이소는 2022년 네이처리퍼블릭과 전용 브랜드 '식물원'을 시작한 뒤 이듬해 VT코스메틱의 '리들샷'을 들였고, 이후 뷰티 브랜드 입점을 늘려 왔습니다.
여기서 눈에 들어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마트의 두 라인 모두 '기업명'이 아니라 '해당 기업의 특정 브랜드와 함께 만든 새 라인' 형태이고, 다이소의 초기 사례 역시 전용 브랜드였습니다. 초저가 매대는 기존 브랜드가 가격을 내려서 들어간 자리가 아니라, 별도 이름이 새로 만들어져 채워진 자리입니다.
다만 이 신호의 범위는 분명히 해두는 편이 좋습니다. 위 내용은 개별 리테일러의 출시·확대 발표와 이를 정리한 보도이지, 초저가 가격대 전체의 매출 규모나 수익성을 보여주는 통계가 아닙니다. 어떤 라인이 얼마나 팔렸고 제조사에 어떤 조건으로 돌아갔는지는 공개되지 않은 경우가 많으므로, 여기서 읽을 수 있는 것은 '진입 방식의 형태'까지입니다.
1. 가격을 내리는 대신 이름을 나눕니다
기존 브랜드로 초저가 매대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흔들리는 것은 그 브랜드의 기준 가격입니다. 같은 이름의 제품이 한쪽에서는 2만 원대, 한쪽에서는 5,000원 아래에 놓이면 고객은 두 가격 중 낮은 쪽을 그 브랜드의 진짜 값으로 기억하게 됩니다.
이름을 나누면 이 충돌을 피할 수 있습니다. '솔루시안 바이 홀리카홀리카', '글로우:업 바이 비욘드'처럼 모브랜드를 뒤에 붙이는 방식은 제조 역량과 신뢰는 빌려오면서 가격 기준선은 분리하는 구조입니다. 고객은 익숙한 이름에서 안심하고, 브랜드는 본 라인의 가격을 지킵니다.
그래서 초저가 검토를 시작할 때 첫 결정은 포뮬러가 아니라 이름 구조입니다. 완전히 새 브랜드로 갈지, 모브랜드를 뒤에 붙일지, 리테일러의 자체 브랜드에 제조로만 참여할지에 따라 이후의 패키지, 표기, 마케팅 책임이 모두 달라집니다.
- 본 라인과 초저가 라인의 이름을 어떻게 분리할지
- 모브랜드를 노출할지, 제조만 담당할지
- 두 라인이 같은 채널에서 마주칠 가능성이 있는지
- 초저가 라인이 종료됐을 때 본 라인에 남는 인상
2. 기획의 주체가 리테일러 쪽으로 옮겨갑니다
이 구조에서 라인을 열자고 결정하는 쪽은 대체로 리테일러입니다. 목표 가격대와 매대 수, 출시 시점이 먼저 정해지고, 그 조건에 맞는 구성을 제조·브랜드 측이 설계합니다. 브랜드가 제품을 만들어 채널을 찾는 평소의 순서와 방향이 반대입니다.
이 순서에서는 사양의 자유도가 줄어드는 대신 수량과 노출의 불확실성이 줄어듭니다. 문제는 한쪽이 확정된 만큼 다른 쪽을 조정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가격과 출시일이 고정된 프로젝트에서 조정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용량, 용기, 구성 품목, 그리고 몇 종으로 낼지입니다.
그래서 초저가 협업 제안을 받았을 때 확인할 것은 단가보다 조건의 순서입니다. 무엇이 이미 정해졌고 무엇이 아직 열려 있는지를 먼저 확정해야, 나중에 원가를 맞추려고 제품의 핵심을 깎는 상황을 피할 수 있습니다.
3. 4,950원은 원가가 아니라 구성의 결과입니다
이마트와 LG생활건강은 '글로우:업 바이 비욘드'를 만들면서 제품 패키지를 단순화하고 AI 모델을 활용해 마케팅 비용을 최소화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즉 가격은 내용물만 깎아서 만든 값이 아니라, 포장과 광고에서 뺀 비용까지 합쳐 만든 값입니다.
품목 구성을 보면 범위를 좁힌 것도 아닙니다. 이 라인에는 토너, 세럼, 크림, 팔자 주름 패치, 아이 앰플, 나이트 마스크 크림, 팩 투 폼, 멀티밤이 들어갔고 콜라겐·바쿠치올 같은 탄력 성분과 글루타치온 같은 브라이트닝 성분을 담았다고 소개됐습니다. 종수를 줄이는 대신 한 라인에 여러 사용 단계를 넣어 매대 한 칸을 완성한 구성입니다.
기획 단계에서 옮겨 볼 지점은 여기입니다. 목표가가 먼저 주어졌을 때 무엇을 줄일지 목록을 만들어 두면 논의가 빨라집니다. 단상자와 인쇄, 용기 형태, 부피 대비 용량, 촬영과 모델, 판촉물은 각각 다른 비용이고 고객이 체감하는 정도도 다릅니다.
- 내용물에서 절대 줄이지 않을 항목
- 포장·인쇄에서 줄여도 되는 항목
- 한 라인에 몇 종을 넣어 매대를 채울지
- 사용 단계가 겹치는 품목이 있는지
4. 같은 구조가 영국 매대에서 반복됩니다
영국에서는 저가 패션 유통업체 프라이마크가 뷰티 자체 브랜드를 통해 한국에서 생산한 모이스처라이저와 시트 마스크 등을 대부분 0.75~5파운드(약 1,400~9,000원)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K뷰티 전문 유통업체 퓨어서울과 협업해 'K-뷰티 미니 마트'를 선보였습니다.
주목할 부분은 이 미니 마트에 들어간 구성입니다. 네오팜, 셀퓨전씨, 성분에디터, 더샘 같은 국내 뷰티 기업의 세컨드 브랜드 제품을 모아 놓았다고 보도됐습니다. 국내 대형마트에서 본 것과 같은 방식이 해외 저가 리테일러에서도 그대로 쓰이고 있는 것입니다.
브랜드 입장에서 이것은 초저가 라인이 국내용 임시 대응으로만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국내 초저가 매대용으로 만든 세컨드 브랜드가 해외 저가 채널의 후보가 되기도 하고, 반대로 처음부터 두 시장을 함께 볼 수도 있습니다. 다만 그 경우 표기와 성분 기준은 판매 국가를 기준으로 처음부터 다시 봐야 합니다.
5. 초저가 라인이 본 브랜드에 남기는 것
초저가 라인의 가장 큰 효용은 매출이 아니라 접점입니다. 5,000원 아래의 제품은 고민 없이 집어 드는 가격이어서, 브랜드를 몰랐던 고객이 처음 써보는 계기가 됩니다. 이마트가 초저가 1탄 이후 상품군을 넓혀 온 것도 이 접점이 작동했다는 신호로 읽을 수 있습니다.
반대 방향의 위험도 같은 곳에서 나옵니다. 초저가 라인의 사용 경험이 나쁘면 그 인상은 이름을 빌려준 모브랜드로 돌아갑니다. 이름을 나누는 것은 가격 기준선을 분리하는 장치이지, 품질 평가를 차단하는 장치가 아닙니다.
그래서 초저가 라인에서도 포기하지 않을 기준을 미리 적어 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발림성, 향의 강도, 자극감처럼 첫 사용에서 바로 판단되는 항목은 가격대와 무관하게 리뷰에 남습니다. 어디까지 줄이고 무엇은 지킬지가 이 라인의 실제 설계입니다.
제품 기획서에 먼저 적을 질문
'초저가 라인을 검토한다'로 시작하지 말고, '어느 채널의 어떤 매대에서, 어떤 이름으로, 몇 종을 한 번에 채울 것인가'를 한 문장으로 적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붙이시길 권합니다. 이 라인을 써본 고객이 우리 본 브랜드를 다시 볼 때, 어떤 문장이 남아 있기를 바라는가.
참고한 자료
- 다이소가 물꼬 튼 초저가 K뷰티, 美·英으로도 확산세 [김연하의 킬링이슈] — 서울경제
- 韓 5000원·英선 5파운드…글로벌 휩쓰는 초저가 K뷰티 — 서울경제
- Ultra-Cheap K-Beauty Spreads From Korea to U.K. and U.S. Retailers — Seoul Economic Daily, 2026-09-17
- 이마트, LG생활건강과 '4950원 초저가 화장품' 선봬 — 이투데이
- 이마트·LG생활건강 '4950원' 초저가 화장품 출시 —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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