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신호인가요?
9월 말 나온 보도들은 방한 외국인 관광객 수와 소비액이 동시에 역대 최고 수준이라는 점을 공통으로 짚었습니다. 올해 1~8월 방한객은 1505만 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238만 명보다 21.6% 늘었고, 1500만 명 돌파 시점도 지난해 10월 중순보다 앞당겨졌습니다. 같은 기간 외국인의 관광 분야 카드 소비액은 14조 180억 원으로, 전년 동기 9조 4396억 원보다 48.5% 증가했습니다. 사람이 21.6% 늘었는데 돈은 48.5% 늘었다는 것은 1인당 지출이 커졌다는 뜻입니다.
뷰티 쪽 관심도 함께 확인됩니다. 글로벌 여행 플랫폼 클룩의 분석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부터 8월 15일까지 외국인 이용자의 국내 뷰티 카테고리 트래픽이 전년 동기 대비 46% 증가했습니다. 보도는 과거 면세점·백화점·대형마트 위주였던 지출 패턴이 의료·뷰티 시술, 약국 화장품, 드럭스토어 쇼핑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채널 이동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 주는 숫자는 약국입니다. BC카드가 분석한 상반기 방한 외국인 카드 소비를 보면, 약국 소비는 전년 동기 대비 1176.9% 늘었고 의료관광 소비에서 약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로 확대됐습니다. 같은 분석에서 외국인의 의료 서비스 이용액은 98% 늘었고, 전체 소비 가운데 의료 소비 비중은 지난해 상반기 12.6%에서 올해 16.3%로 커졌습니다. 성형은 35.5% 늘었는데 피부 미용은 109.8% 늘어, 의료관광의 무게가 성형에서 피부·뷰티 쪽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해석도 함께 나왔습니다.
지역 축도 갈립니다. 의료 소비는 서울이 92.8%를 차지할 만큼 수도권에 쏠려 있는 반면, 소비재 쇼핑은 부산·경주·제주 같은 주요 관광지로 접점이 넓어지고 있습니다. 약국 쪽에서는 지역 증가율이 부산 591%, 제주 359%로 보도됐고, 명동에서 시작된 외국인 타깃 약국이 부산 해운대·남포동까지 확산되고 있다는 현장 보도도 나왔습니다.
다만 이 숫자들의 성격은 구분해 두는 편이 좋습니다. 카드 소비액은 한 카드사가 집계한 결제 데이터이고, 클룩의 46%는 한 플랫폼의 트래픽이지 매출이 아닙니다. 1176.9%처럼 큰 증가율은 시작점이 작을 때 나오는 숫자이고, 실제로 약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의료관광 소비의 2.0%입니다. 지역 증가율 역시 약국 채널 안에서의 증가이지 그 지역 화장품 판매 전체가 아닙니다. 여기서 읽을 수 있는 것은 '관광객 뷰티 소비의 접점이 면세점 밖으로 늘고 있다'까지이고, '약국이 주요 매대가 됐다'까지는 아닙니다.
1. 관광객이 가는 곳은 면세점만이 아닙니다
수출이나 역직구를 보던 브랜드에게 방한 관광객은 오래 '면세점 이야기'였습니다. 면세 채널에 들어가면 관광객 수요를 잡는 것이고, 들어가지 못하면 관광객은 우리와 무관한 수요였습니다. 이 구도에서는 브랜드 규모가 곧 접근권이었습니다.
지출이 약국과 드럭스토어, 시술 이후 구매로 퍼진다는 것은 접근권의 형태가 달라진다는 뜻입니다. 이 채널들은 입점 조건과 진열 방식, 상담이 일어나는 방식이 면세점과 다릅니다. 규모가 크지 않아도 들어갈 수 있는 자리가 생기는 대신, 그 자리에서 요구하는 조건도 다릅니다.
실무에서 먼저 정리할 것은 '우리 제품이 어느 접점에 놓일 수 있는가'입니다. 같은 제품이라도 면세점 진열대와 약국 카운터, 드럭스토어 엔드캡에서 팔리는 방식이 다릅니다. 이 판단을 하지 않고 '관광객 수요가 늘었다'만 보면, 늘어난 수요와 우리 제품 사이에 실제로 연결되는 지점이 없는 상태로 남습니다.
- 우리 제품이 놓일 수 있는 접점이 면세·드럭스토어·약국 가운데 어디인지
- 그 접점의 입점 조건과 최소 수량을 확인했는지
- 해당 채널에서 제품을 설명하는 사람이 누구인지(직원 상담인지 진열인지)
- 같은 제품을 다른 접점에 동시에 놓을 때 가격이 충돌하지 않는지
2. 시술 뒤에 오는 구매를 따로 생각합니다
상반기 분석에서 성형은 35.5% 늘었고 피부 미용은 109.8% 늘었습니다. 피부 미용 쪽이 두 배 넘게 빠르게 커졌다는 뜻입니다. 시술 건수가 늘면 시술 직후에 필요한 제품 수요도 같이 생깁니다.
보도에 나온 약국 구매 품목의 순서가 이 흐름과 겹칩니다. 가장 많이 언급된 품목은 재생크림 등 피부 관리용 크림류였고, 이어 여드름·트러블 케어 제품, 영양제·건강기능식품, 스킨케어 화장품, 인공눈물·눈 영양제 순으로 집계됐습니다. 맨 앞에 온 것이 색조나 향이 아니라 '진정·회복' 쪽 제품이라는 점을 봐 둘 만합니다.
여기서 반드시 구분해야 하는 선이 있습니다. 시술 이후 사용을 염두에 둔 기획과, 시술 효과를 표시하는 광고는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화장품은 의약품으로 오인될 수 있는 표현을 쓸 수 없고, 이 경계를 넘은 광고가 실제로 적발되는 사례가 국내에서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사용 상황을 상정해 처방과 사용감을 설계하는 것은 기획이지만, 그 상황을 라벨과 상세페이지에 문장으로 쓰는 것은 별도의 검토가 필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이 수요를 보는 브랜드가 정리해야 할 것은 표현이 아니라 사양입니다. 자극이 적은 처방인지, 향과 색을 어디까지 넣을지, 용기가 위생적으로 쓰기 쉬운 형태인지 같은 것들입니다. 표현은 그 뒤에 규정 안에서 만드는 편이 안전합니다.
3. 수도권에 몰린 것과 지방으로 퍼진 것을 구분합니다
같은 데이터 안에서 두 방향이 동시에 나옵니다. 의료 소비는 서울이 92.8%로 압도적으로 몰려 있고, 소비재 쇼핑은 부산·경주·제주로 넓어지고 있습니다. 약국 소비 증가율도 부산 591%, 제주 359%로 지역 쪽이 컸습니다.
이 두 방향은 브랜드에게 다른 신호입니다. 시술과 결합된 제품, 상담을 거쳐 팔리는 제품은 여전히 서울에서 기회가 큽니다. 반대로 여행 중 눈에 들어와 바로 집어 가는 제품은 관광지 쪽에서 기회가 생기고 있습니다. 하나의 제품으로 두 상황을 동시에 노리면 대개 어느 쪽에도 맞지 않습니다.
관광지에서 팔리는 제품에는 조건이 몇 가지 더 붙습니다. 캐리어에 들어가는 크기, 기내 반입에 문제가 없는 용량, 깨지지 않는 용기, 여러 개를 한 번에 집기 쉬운 가격대입니다. 이 조건들은 처방보다 용기와 용량의 문제이고, 개발 후반에 바꾸기 어려운 항목들입니다.
명동에서 시작된 외국인 타깃 약국 형태가 부산 해운대와 남포동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보도는 이 흐름이 일시적 유입이 아니라 매장 형태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쪽에 가깝습니다. 다만 이것도 몇 개 상권의 현장 관찰이므로, 전국적인 채널 구조로 읽기에는 아직 이릅니다.
- 우리 제품이 상담형인지 즉흥 구매형인지
- 여행 중 휴대와 기내 반입 조건을 용량이 충족하는지
- 용기가 이동 중 파손과 누액에 견디는지
- 여러 개를 사 갈 가격대인지, 한 개만 사 갈 가격대인지
4. 외국인이 집어 가는 제품에는 조건이 하나 더 붙습니다
국내 소비자를 기준으로 만든 제품을 관광객이 그대로 집어 가면 라벨 문제가 따라옵니다. 매장에서는 직원이 설명해 주지만, 그 제품이 캐리어에 담겨 본국으로 가면 남는 것은 용기에 인쇄된 정보뿐입니다. 성분명, 사용법, 사용 기한을 읽을 수 있는지가 재구매로 이어지는 조건이 됩니다.
국내 판매용 제품과 수출용 제품의 표시 요건은 다릅니다. 관광객 구매는 형식상 국내 판매이지만 실제 사용은 해외에서 일어나는 중간 지점에 있습니다. 여기서 흔히 생기는 문제는 제품 자체가 아니라, 본국에 돌아간 소비자가 같은 제품을 다시 찾지 못하거나 이름을 검색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이 수요를 노린다면 최소한 제품명과 핵심 정보를 영문으로도 읽을 수 있게 두는 편이 낫습니다. 다만 무엇을 어떻게 병기할 수 있는지는 표시·광고 규정의 범위 안에서 정해야 하므로, 디자인 확정 전에 확인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라벨은 인쇄가 끝나면 바꾸는 비용이 가장 큰 항목입니다.
- 제품명을 본국에서 검색할 수 있는 형태로 표기했는지
- 사용법과 사용 기한이 한국어 외에도 읽히는지
- 표시 항목 구성이 국내 규정 안에서 정리됐는지
- 라벨 변경이 필요할 때 언제까지 확정해야 하는지
5. 관광객 수요는 재구매로 이어질 때 매출이 됩니다
관광객 한 사람이 한국에서 제품을 사는 것은 한 번의 판매입니다. 그 사람이 본국에서 다시 사는 것이 사업이 되는 지점입니다. 방한 소비가 늘어난다는 보도와 역직구가 함께 늘어난다는 보도가 같이 나오는 것은 이 연결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쪽을 가리킵니다.
연결이 끊기는 지점은 대개 단순합니다. 본국에서 살 수 있는 경로가 없거나, 있는데 찾지 못하거나, 가격이 크게 달라서 사지 않는 경우입니다. 세 가지 모두 제품 품질과는 무관하고, 판매 구조를 미리 정해 두지 않아서 생깁니다.
그러니 방한 관광객 채널에 들어가기로 정한 시점에, 그 뒤의 경로도 같이 정해 두시길 권합니다. 어느 나라에서 온 고객이 많은 채널인지, 그 나라에서 우리 제품을 살 수 있는 경로가 무엇인지, 그 경로의 가격이 국내 가격과 얼마나 벌어지는지입니다. 이 세 가지가 정해져 있지 않으면 관광객 매출은 그 시즌에서 끝납니다.
덧붙여, 관광객 수요는 환율과 항공 노선, 비자 정책 같은 외부 변수에 함께 움직입니다. 올해의 증가율을 다음 해의 기준선으로 삼아 생산 수량을 정하는 것은 위험한 쪽입니다. 늘어난 수요에 맞춰 초도 물량을 키우기 전에, 그 수요가 빠질 때 남는 재고를 어디로 보낼지 한 줄 적어 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제품 기획서에 먼저 적을 질문
'관광객이 늘었으니 우리도 관광 상권을 본다'로 시작하지 말고, '우리 제품은 상담을 거쳐 팔리는 제품인가, 지나가다 집어 가는 제품인가'를 한 문장으로 적어 보시기 바랍니다. 둘 중 하나를 정하면 매대와 용량, 용기, 가격대가 함께 정해집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붙이시길 권합니다. 이 제품을 한국에서 산 사람이 본국에서 다시 사려고 할 때, 어디에서 얼마에 살 수 있습니까.
참고한 자료
- 방한 외국인 1,500만 시대, K뷰티 소비지형이 달라진다 — 코스인코리아닷컴
- 8월 누적 방한객 1500만명…소비액 증가세도 역대 최고 — 뉴스핌, 2026-09-28
- 외국인 의료관광 달라졌다…약국 소비 1176.9% 급증 — 약사공론
- 부산 591%·제주 359%…지역 약국 찾는 외국인 늘었다 — 약사공론
- 명동에서 부산 해운대까지…외국인 타깃 약국 확산 — 데일리팜
- K뷰티, 외국인 소비 46% 급증…퍼스널 컬러·K세신 주목 — 헤럴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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